지난 글에서 우리는 AI라는 ‘뇌’를 얻은 로보틱스 기술이 물류, 배송, 우주 탐사 등 다방면으로 확산하는 현주소를 살펴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대중의 상상력과 산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분야는 단연 ‘휴머노이드 로봇 (Humanoid Robot)’입니다.
로보틱스를 소개하는 지난글을 참고하시죠.
SF 영화 속에서나 존재했던 ‘인간을 닮은 기계’가 테슬라의 ‘옵티머스’, Figure AI의 ‘Figure 01’처럼 현실의 공장과 일상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성과를 넘어, ‘노동’의 정의 자체를 뿌리째 바꿀 수 있는 거대한 혁명의 서막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휴머노이드 로봇의 핵심 개념과 발전 역사, 최신 기술 현황을 살펴보고, 이 치열한 ‘AI 육체 전쟁’을 이끄는 미국, 중국, 한국의 7대 핵심 기업을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1. 휴머노이드 로봇이란 무엇인가?: ‘범용성’이라는 궁극의 가치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름 그대로 ‘인간(Human)’의 형태(-oid)를 모방하여 설계된 로봇을 말합니다. 즉, 머리, 몸통, 두 팔, 그리고 두 다리를 가진 인간의 신체 구조를 근간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간의 형태’일까요? 이는 미학적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핵심은 ‘범용성(General-Purpose)’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즉 집, 공장, 사무실, 도로는 모두 ‘인간의 신체’에 맞춰 설계되었습니다. 계단을 오르고, 문손잡이를 돌리며, 공구를 잡고, 버튼을 누르는 모든 환경은 인간의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손가락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바퀴 달린 로봇이나 로봇 팔은 특정 임무(운반, 용접)는 잘하지만, 계단을 만나거나 다른 도구를 잡아야 하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은 우리의 환경을 전혀 바꾸지 않고도 인간이 하던 거의 모든 물리적 작업을 대체할 수 있는 궁극의 ‘범용 노동력’입니다.
2. 꿈에서 현실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의 역사
휴머노이드 로봇은 수십 년간 이어진 공학자들의 끈질긴 도전의 산물입니다.
- 1970년대 (태동기): 일본 와세다 대학의 ‘와봇-1(WABOT-1)’이 시초로 꼽힙니다. 조악했지만 두 다리로 걷고, 물체를 인식하며, 간단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 2000년 (여명기):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혼다(Honda)의 ‘아시모(ASIMO)’가 등장합니다. 아시모는 매끄럽게 걷고, 계단을 오르며, 심지어 뛰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안정적인 이족보행(Bipedal Locomotion)’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수조 원의 R&D 비용이 투입된,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쇼’에 가까웠습니다.
- 2010년대 (도약기):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아틀라스(Atlas)’가 등장하며 패러다임을 바꿉니다. 아틀라스는 험지에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은 물론, 파쿠르, 백플립 등 인간 운동선수 수준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동적 균형 제어’ 기술의 정점이었습니다.
- 2020년대 (AI 융합기): 테슬라가 ‘옵티머스(Optimus)’를 공개하며, 경쟁의 축이 ‘하드웨어’에서 ‘AI 소프트웨어’로 이동합니다. 아틀라스가 공학의 정점이었다면, 옵티머스는 ‘대규모 AI 학습’과 ‘대량 생산’을 통해 ‘쓸모 있는 노동력’을 만들겠다는, 상업화에 초점을 맞춘 선언이었습니다.

3. ‘AI의 뇌’를 얻다: 최신 기술 현황과 미래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은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만나 폭발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 핵심 현황 1: ‘엔드-투-엔드’ AI 학습 과거의 아시모가 엔지니어들이 설계한 수백만 줄의 코드로 움직였다면, 지금의 로봇들은 ‘보고 배웁니다’. 테슬라 옵티머스나 Figure AI는 인간의 행동을 비디오 데이터로 학습(모방 학습)하거나, 가상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수억 번의 시행착오(강화 학습)를 거쳐 스스로 걷는 법과 물건을 집는 법을 터득합니다.
- 핵심 현황 2: 정밀한 ‘근육’ (엑추에이터) 경쟁 로봇의 ‘근육’에 해당하는 구동 장치, 즉 엑추에이터(Actuator)가 유압식(Hydraulic, 구형 아틀라스)에서 정밀 전기 모터(Electric, 신형 아틀라스, 옵티머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습니다. 전기 모터 방식은 더 가볍고, 조용하며,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대량 생산’에 유리합니다.
- 향후 발전 방향: ‘손’과 ‘상호작용’ 이족보행이 어느 정도 정복된 지금, 다음 격전지는 ‘손(Hand)’입니다. 인간처럼 섬세하게 물체(부드러운 물체, 복잡한 공구)를 다루는 능력, 그리고 AI를 통해 인간의 음성 명령을 이해하고 안전하게 ‘상호작용’하는 능력이 상용화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4. 휴머노이드 격전지: ‘AI 육체 전쟁’을 이끄는 7대 기업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AI 기술, 막대한 자본, 그리고 엔지니어링 역량을 갖춘 거대 기업들과 민첩한 스타트업들이 뒤엉킨 거대한 ‘격전지’입니다. 이 경쟁은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맹추격하며 한국이 전략적으로 M&A에 나서는 형국입니다.

🇺🇸 미국: ‘AI 두뇌’와 ‘원천 기술’의 선도자
미국은 AI 소프트웨어와 로봇 하드웨어의 원천 기술을 모두 보유하며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1. 테슬라 (Tesla): ‘AI 우선주의’와 ‘대량 생산’
- 로봇: 옵티머스 (Optimus)
- 전략: 테슬라는 이 경쟁의 ‘게임 체인저’입니다. 이들의 접근법은 ‘로봇 우선’이 아닌 **’AI 우선’**입니다. 자율주행(FSD) 개발을 통해 축적한 방대한 실제 환경 데이터, 비전 기반 AI, 그리고 ‘도조(Dojo)’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엔드-투-엔드’ 학습 능력이 핵심입니다.
- 강점: 이미 전기차를 통해 입증된 정밀 엑추에이터 기술과 ‘기가 프레스’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대량 생산(원가 절감) 능력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옵티머스를 공장(기가팩토리)의 노동력으로 우선 투입한 뒤, 가정용 로봇으로 확대해 자동차보다 더 큰 시장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2. Figure AI (피규어 AI): ‘AI 네이티브’와 ‘거대 연합’
- 로봇: Figure 01
- 전략: 2022년에 설립된 이 스타트업은 ‘AI 네이티브’ 휴머노이드의 상징입니다.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OpenAI와의 파트너십입니다.
- 강점: Figure 01은 ChatGPT(GPT-4o)를 ‘뇌’로 탑재했습니다. 이는 로봇이 인간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음성 명령(예: “나 배고픈데, 먹을 것 좀 줘”)을 이해하고, 스스로 추론하여 행동(예: 사과를 찾아 건네줌)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MS, 아마존(제프 베이조스), 엔비디아, 인텔 등 초거대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며 ‘반-테슬라’ 연합의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3. 보스턴 다이내믹스 (Boston Dynamics): ‘역동성’의 상징 (현대차 소유)
- 로봇: 아틀라스 (Atlas)
- 전략: 지난 10여 년간 ‘아틀라스’의 경이로운 파쿠르 영상으로 로봇 공학의 정점을 보여준 기술의 아이콘입니다. (소유주는 한국의 현대자동차그룹입니다.)
- 강점: 최근 유압식 구형 아틀라스를 은퇴시키고, 100% 전동식 신형 아틀라스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R&D 쇼케이스를 넘어 본격적인 상용화를 의미합니다. 인간을 뛰어넘는 유연함(관절이 360도 회전)을 바탕으로, 모기업인 현대차의 스마트 팩토리와 물류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 중국: ‘가격 경쟁력’과 ‘빠른 추격’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거대한 내수 시장, 세계적인 공급망을 무기로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4. 유니트리 로보틱스 (Unitree Robotics): ‘로봇 개’에서 ‘인간형’으로
- 로봇: H1
- 전략: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팟’을 닮은 4족 보행 로봇(로봇 개)으로 유명해진 기업입니다. 여기서 축적한 동적 보행 기술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H1’을 공개했습니다.
- 강점: 놀라운 하드웨어 성능과 가격 경쟁력입니다. H1은 안정적인 이족보행은 물론, 점프와 고속 주행 등 높은 기동성을 보여주면서도 기존 로봇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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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푸리에 인텔리전스 (Fourier Intelligence): ‘재활’에서 ‘범용’으로
- 로봇: GR-1
- 전략: 본래 재활 및 의료용 ‘외골격 로봇’을 개발하던 기업입니다. 여기서 확보한 정밀 엑추에이터 기술과 인간 상호작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범용 휴머노이드 ‘GR-1’을 개발했습니다.
- 강점: 이미 수익을 내는 ‘재활’ 시장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 능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 물류, 노인 돌봄 등 구체적인 상용화 목표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 한국: ‘제조업 시너지’와 ‘전략적 M&A’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반도체, 자동차, 가전) 인프라와 IT 기술력을 바탕으로, M&A와 전략적 투자를 통해 휴머노이드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6. 현대자동차그룹: ‘미래 모빌리티’와 ‘스마트 팩토리’
- 전략: 2021년 ‘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세계 최고의 로봇 기업을 인수한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현대차는 단순히 로봇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자사의 핵심 사업인 ‘자동차 제조’와 ‘미래 모빌리티’에 로봇을 융합하고 있습니다.
- 강점: ‘스마트 팩토리’라는 명확한 테스트베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BD의 아틀라스와 자사의 로봇 기술을 통합하여, 위험하고 반복적인 공장 노동을 대체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7. 삼성전자 & 레인보우 로보틱스: ‘반도체’와 ‘초격차’
- 전략: 삼성전자가 카이스트(KAIST) 휴머노이드 연구소(HUBO) 출신이 설립한 ‘레인보우 로보틱스’의 지분을 인수한 것은 휴머노이드 시장 진출의 강력한 신호탄입니다.
- 강점: 압도적인 시너지입니다. 삼성은 세계 1위의 반도체(로봇의 ‘뇌’), 디스플레이, 센서, 가전(로봇의 ‘몸’) 제조사입니다. 레인보우 로보틱스의 로봇 설계 기술과 삼성의 초격차 제조 역량이 결합될 경우, 원가 경쟁력과 성능을 모두 갖춘 강력한 로봇(특히 반도체 공정, 가사도우미)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5. 결론: 노동의 종말인가, 노동의 진화인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 속도는 AI의 발전 속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아틀라스’가 보여준 경이로운 하드웨어(몸)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그 몸에 얼마나 똑똑한 AI(뇌)를 탑재하느냐의 소프트웨어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테슬라, Figure AI,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주도하는 이 경쟁은 단순히 ‘누가 더 멋진 로봇을 만드느냐’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는 **’노동력 자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경제 전쟁입니다.
이 기업들이 성공하는 순간, ‘노동’은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됩니다. 이들은 로봇이라는 하드웨어를 파는 것을 넘어, ‘시간당 노동력’ 자체를 구독 서비스(RaaS, Robot as a Service)로 판매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자, 동시에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입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AI 혁명이 만들어낼 가장 거대한 ‘물리적 시장’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