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팅, 블록체인의 ‘방패’를 뚫는 창인가? PQC와 디지털 경제의 미래 (3)

지난 두 편의 글에서 우리는 양자 컴퓨팅의 경이로운 작동 원리와, IBM, 구글, 아이온큐(IonQ) 등 글로벌 기업들의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기술이 신약 개발이나 신소재 발견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주요기업을 소개한 지난 글을 살펴보시죠

하지만 이 ‘궁극의 기술’은 양날의 검입니다. 양자 컴퓨팅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경제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강력한 잠재적 위협이기도 합니다. 바로 ‘암호(Cryptography)’ 때문입니다.

우리의 온라인 뱅킹, 이메일, 전자상거래, 그리고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디지털 신뢰는 ‘현재의 컴퓨터로는 풀 수 없는 수학 문제’라는 방패 위에 서 있습니다. 만약 이 방패를 뚫는 창이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최근의 양자 컴퓨팅 기술의 발전과 혁신에 대한 뉴스가 있을 때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는 등, 양자 컴퓨팅 기술은 그 자체 뿐 아니라 다른 투자처의 가격과 가치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양자 컴퓨팅이 현대 암호 기술과 블록체인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해결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양자 내성 암호(PQC)’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워낙 생소한 용어와 개념들이기 때문에 한번에 100%를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각 기술들에 대한 큰 틀에서의 이해와 논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디지털 경제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쇼 알고리즘’의 위협

현재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대부분의 디지털 활동은 ‘공개키 암호(Public Key Cryptography, PKC)’ 기술에 의존합니다.

  • 작동 원리: 이 방식은 ‘개인키(Private Key)’와 ‘공개키(Public Key)’라는 한 쌍의 키를 사용합니다. 공개키는 은행의 계좌번호처럼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개인키는 비밀번호처럼 나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공개키로 암호화된 정보는 오직 그와 짝을 이루는 개인키로만 풀 수 있습니다.
  • 핵심 기반: 이 시스템의 안전성은 ‘RSA’‘타원곡선 암호(ECC)’ 같은 알고리즘에 기반하며, 이들은 ‘매우 큰 숫자를 소인수분해’하거나 ‘타원곡선 위의 이산로그 문제’를 푸는 것이 고전 컴퓨터로는 사실상 불가능(수천~수백만 년 소요)하다는 수학적 난제에 기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4년, 수학자 피터 쇼(Peter Shor)는 ‘쇼 알고리즘’을 발표하며 이 전제를 무너뜨렸습니다.

‘쇼 알고리즘’은 만약 충분한 성능의 양자 컴퓨터가 존재한다면, 이 ‘풀 수 없는 수학 문제’들을 매우 빠른 시간(수 시간 또는 수 분) 안에 풀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암호가 뚫리는 수준이 아닙니다. 인터넷 뱅킹의 보안(SSL/TLS), 공인인증서, 이메일 보안, 나아가 정부와 군사의 통신망까지, 디지털 경제를 지탱하는 신뢰의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쇼어 알고리즘이란?

2. 새로운 방패의 개발: 양자 내성 암호 (PQC)

이처럼 강력한 양자 컴퓨팅이라는 ‘창’이 개발됨에 따라, 이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방패’의 필요성이 시급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 내성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 PQC)’입니다.

  • PQC란 무엇인가? 이름 그대로 ‘양자 시대 이후에도 안전한 암호 기술’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점은 PQC 자체가 양자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컴퓨터로도 풀기 어려운 새로운 수학적 난제에 기반한 암호 알고리즘이라는 것입니다.
  • 새로운 수학 문제: PQC는 격자 기반(Lattice-based), 코드 기반(Code-based), 해시 기반(Hash-based) 등 다양한 수학적 문제들을 활용합니다. 이 문제들은 고전 컴퓨터는 물론, ‘쇼 알고리즘’을 탑재한 양자 컴퓨터로도 효율적으로 풀기 어렵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중론입니다.

PQC 표준화 동향: NIST의 역할

이러한 PQC 기술은 단순한 이론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E-E-A-T의 ‘신뢰성(Trustworthiness)’과 ‘권위(Authority)’ 측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기관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입니다.

NIST는 2016년부터 전 세계 암호학자들을 대상으로 차세대 PQC 표준 알고리즘 공모전을 진행해왔습니다. 수년간의 검증을 거쳐 2022년, CRYSTALS-Kyber(키 교환)와 CRYSTALS-Dilithium(디지털 서명) 등을 표준 알고리즘의 첫 번째 후보로 선정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는 이 NIST의 표준을 바탕으로 기존 암호 시스템을 PQC로 ‘전환(Migration)’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이는 인터넷 전체의 보안 인프라를 교체하는 거대한 작업입니다.

3.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양자 컴퓨팅의 ‘두 가지’ 공격 벡터

‘탈중앙화된 신뢰’를 모토로 하는 블록체인 기술 역시 현대 암호학에 깊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두 가지 핵심 암호 기술로 작동합니다.

  1. 디지털 서명 (소유권 증명): 타원곡선 디지털 서명 알고리즘(ECDSA)
  2. 채굴 (합의 메커니즘): 해시 함수 (SHA-256)

놀랍게도, 양자 컴퓨팅은 이 두 가지 영역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위협을 가합니다.

1) 개인키 탈취 위협 – 가장 치명적인 위협! (by 쇼 알고리즘)

이것이 블록체인이 마주한 가장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입니다.

  • 공격 시나리오: 우리가 암호화폐를 소유한다는 것은 ‘개인키(Private Key)’를 보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개인키로 서명해야만 코인을 전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개인키에서는 ‘공개키(Public Key)’가 파생됩니다.
  • 문제점: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에서 트랜잭션(거래)을 발생시키면, 나의 ‘공개키’가 네트워크 전반에 공개되어 “이 거래가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 양자 컴퓨터의 공격: 고전 컴퓨터는 이 공개키를 봐도 개인키를 역산할 수 없습니다. (타원곡선 암호의 난제) 하지만 ‘쇼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양자 컴퓨터는 이 공개키를 기반으로 개인키를 순식간에 계산해낼 수 있습니다.
  • 구체적 피해: 공격자가 네트워크에 떠도는 나의 공개키를 확보한 뒤, 양자 컴퓨터로 개인키를 탈취합니다. 그리고는 내 지갑에 있는 모든 자산을 자신의 지갑으로 빼돌리는 새로운 트랜잭션을 생성하여 네트워크에 전송할 수 있습니다. 지갑 자체가 완전히 무력화되는 것입니다.

2) 채굴 속도 향상 위협 (by 그로버 알고리즘)

두 번째 위협은 ‘쇼 알고리즘’이 아닌 **’그로버 알고리즘(Grover’s Algorithm)’**에서 나옵니다.

  • 공격 시나리오: 비트코인의 작업증명(PoW) 채굴은 ‘논스(Nonce)’라는 특정 값을 찾기 위해 SHA-256 해시 함수를 무수히 반복 대입하는 ‘무차별 대입 검색’ 작업입니다.
  • 그로버 알고리즘의 역할: 이 알고리즘은 정렬되지 않은 데이터베이스에서 특정 항목을 찾는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줍니다. (고전 컴퓨터가 N번 시도해야 한다면, 양자 컴퓨터는 root {N}번 만에 가능)
  • 구체적 피해: 이는 ‘쇼 알고리즘’처럼 암호를 ‘깨는’ 것은 아니지만, 채굴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할 수 있습니다. 만약 특정 집단이 양자 컴퓨터로 채굴에 성공한다면, 전체 네트워크의 해시 파워 51% 이상을 장악하여 거래 기록을 위·변조하는 ‘51% 공격’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블록체인의 ‘불변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훼손시킵니다.

4. 블록체인의 대응: ‘양자 내성’으로의 진화

이처럼 명확한 위협 앞에서 블록체인 커뮤니티 역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결국 ‘PQC(양자 내성 암호)’로의 전환입니다.

1. PQC 서명 알고리즘으로의 전면 교체 (Hard Fork)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쇼 알고리즘’에 취약한 기존의 ECDSA 서명 방식을 버리고, NIST가 표준화한 CRYSTALS-Dilithium 같은 PQC 기반 서명 알고리즘으로 교체하는 것입니다.

  • 어려움: 이는 블록체인의 핵심 코드를 변경하는 작업으로, 네트워크 구성원 전체의 동의가 필요한 ‘하드포크(Hard Fork)’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기술적으로도, 사회적 합의 측면에서도 엄청난 난이도를 가집니다.
  • 선두 주자: 이더리움 재단은 이미 PQC로의 전환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QRL(Quantum Resistant Ledger)처럼 아예 처음부터 양자 내성을 목표로 설계된 프로젝트들도 존재합니다.

2. ‘주소 재사용 금지’와 즉각적 방어

PQC로의 전면 전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사용자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어책입니다.

  • 원리: 앞서 언급했듯이, ‘공개키’는 트랜잭션을 발생시킬 때 네트워크에 노출됩니다.
  • 방어: 만약 한 번 사용한 주소(공개키가 노출된 주소)를 절대 재사용하지 않고, 거래마다 항상 새로운 주소를 사용한다면, 공격자가 내 공개키를 확보하는 시점은 이미 그 지갑이 비어있는(자금이 빠져나간) 시점이 됩니다. 이는 공격의 위험성을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3. 해시(PoW) 위협에 대한 대응

‘그로버 알고리즘’을 이용한 채굴 위협은 ECDSA 탈취 위협보다는 심각성이 덜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 대응: 네트워크가 양자 컴퓨터의 해시 파워 증가를 감지하면, 그에 맞춰 채굴 난이도를 상향 조정하면 그만입니다. 또한, SHA-256 대신 SHA-3와 같이 이미 양자 내성이 더 강하다고 알려진 해시 함수로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습니다.
  • PoS로의 전환: 이더리움처럼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으로 합의 메커니즘을 변경하는 것 역시 좋은 대안입니다. PoS는 막대한 해시 파워 경쟁이 필요 없기 때문에 ‘그로버 알고리즘’의 위협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5. 결론: ‘양자 해일’ 앞의 블록체인, 생존은 ‘진화’에 달렸다

양자 컴퓨팅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라는 탈중앙화 디지털 경제에 명확한 ‘시한부’ 위협입니다. 이는 ‘만약(If)’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When)’의 문제입니다.

핵심은 양자 컴퓨팅이 블록체인의 ‘개념’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구현 방식(ECDSA)’을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이 위협은 역설적으로 블록체인이 PQC라는 새로운 보안 갑옷으로 갈아입도록 강제하며, 기술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투자자 및 기술 분석가의 관점에서, 우리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주요 프로젝트들이 이 ‘PQC로의 전환’ 로드맵을 얼마나 진지하게 준비하고 실행하는지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암호학적 위협에 대한 대응 속도와 기술력이 미래 디지털 자산의 신뢰성을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산 배분의 중요한 축으로 암호화폐를 운용하고 있는 투자자 입장에서, 양자내성 암호 (PQC)의 기술개발과 적용, 암호화폐의 본질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진화시키는 것이 투자처로서의 가치를 유지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주요 산업들 (금융, 의료, 공공, 국방, 통신 및 인터넷 서비스, 데이터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등)에서 어떤 양자내성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지, 양자 컴퓨팅 시대에서 사이버 보안 투자에 대한 전략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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