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노동’의 정의를 바꾸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이로운 발전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이미 우리 삶과 산업 깊숙한 곳에서 24시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세상을 바꾸는 로봇들이 있습니다. 바로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AMR)’입니다.
로보틱스에 대한 지난글을 살펴보시죠.
인터넷 쇼핑으로 주문한 상품이 다음 날 새벽 현관문 앞에 도착하는 ‘로켓배송’의 기적 뒤에는, 거대한 물류창고를 밤새도록 누비는 AMR의 숨은 공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로봇들은 창고를 넘어, 복잡한 보도블록을 뚫고 우리 집 현관문 앞까지 음식을 배달(라스트마일 배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휴머노이드보다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상용화되고 있는 AMR과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의 핵심 개념, 발전 역사, 최신 기술 현황, 그리고 이 거대한 물류 혁명을 이끄는 7대 기업을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1. AMR이란 무엇인가?: ‘정해진 길’을 벗어난 로봇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분야를 이해할 때, ‘AMR’과 ‘AGV’의 차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AGV (Automated Guided Vehicle, 무인 운반차): ‘과거’의 물류 로봇입니다. AGV는 바닥에 그려진 자기 테이프, 페인트 선, 또는 정해진 궤도(레일)만을 따라 움직이는 로봇입니다. 정해진 경로만 반복하며,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그대로 ‘멈출’ 뿐, 피하지 못합니다. 유연성이 떨어져 공장 설비나 창고 구조를 바꾸면 로봇의 궤도도 모두 새로 깔아야 했습니다.
- AMR (Autonomous Mobile Robot,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현재’와 ‘미래’의 물류 로봇입니다. AMR은 ‘자율주행 자동차’의 축소판입니다. LiDAR(라이다), 카메라, 3D 센서 등을 탑재하고, SLAM(동시적 위치추정 및 지도작성)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창고 지도를 그리고 실시간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핵심 차이점: AMR은 앞에 장애물(사람, 지게차)이 나타나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AI가 판단하여 스스로 장애물을 우회하는 ‘최적의 경로’를 실시간으로 찾아냅니다. 설비가 바뀌어도 다시 지도를 그리면 그만이므로 유연성이 극도로 높습니다.
이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기술이 창고(실내)를 벗어나 보도블록(실외)으로 나온 것이 바로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입니다.
2. 물류 혁명의 서막: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개발의 역사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의 역사는 ‘효율성’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의 과정이었습니다.
- 1950년대 (AGV의 태동): 최초의 AGV는 1953년, 바닥의 전선을 따라 움직이는 견인 트랙터 형태로 등장했습니다. 수십 년간 이 AGV는 제조업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 2000년대 (AMR의 여명): AGV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SLAM 기술과 센서 기술이 발전하며, 로봇이 궤도 없이 움직이는 ‘자율 내비게이션’의 기초가 마련되었습니다.
- 2012년 (결정적 순간, 키바의 등장): 이커머스(E-commerce)의 폭발적인 성장은 물류센터의 혁신을 요구했습니다. 2012년, 아마존(Amazon)이 로봇 스타트업 ‘키바 시스템즈(Kiva Systems)’를 7억 7,50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이는 AMR 혁명의 진정한 시작점이었습니다. 키바의 로봇(현재 ‘Amazon Robotics’)은 ‘사람이 물건을 가지러 가는(Person-to-Goods)’ 방식을 ‘물건(선반)이 사람에게 오는(Goods-to-Person, GTP)’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 2010년대 후반 (라스트마일의 도전): 아마존이 키바를 인수한 뒤 독점적으로 사용하자, 다른 기업들은 ‘포스트-키바’ AMR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동시에, 물류 비용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라스트마일 배송'(배달원이 현관문까지 가는 마지막 구간)의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MR 기술이 실외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3. ‘창고’에서 ‘보도블록’까지: 최신 기술 현황과 미래
현재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기술은 ‘군집 제어’와 ‘실외 주행’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 핵심 현황 1: 군집 지능 (Swarm Intelligence) 아마존 물류센터에서는 수천 대의 AMR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24시간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이는 ‘군집 지능’ 또는 ‘플릿 매니지먼트(Fleet Management)’ 소프트웨어 덕분입니다. 중앙 관제 시스템(AI)이 각 로봇의 위치, 배터리 상태, 작업 우선순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전체 창고의 효율성이 최대화되도록 수천 대의 로봇에게 동시에 명령을 내리고 경로를 배분합니다.
- 핵심 현황 2: 실외 자율주행 (Outdoor Navigation)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은 창고보다 훨씬 더 복잡한 도전에 직면합니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 신호등, 날씨 변화 등 **’통제 불가능한 변수’**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고성능 LiDAR, 3D 카메라, GPS, IMU(관성 측정 장치) 등 고가의 센서가 융합되며, AI의 ‘돌발상황 대처 능력’이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 향후 발전 방향: ‘RaaS’와 ‘휴머노이드와의 협업’ 미래의 AMR은 단순히 판매되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사용한 만큼 비용을 내는 ‘RaaS(Robot as a Service, 서비스형 로봇)’ 구독 모델로 진화할 것입니다. 또한, 물류창고에서 AMR이 선반을 가져오면, 지난 글에서 다룬 ‘휴머노이드 로봇’이 선반에서 물건을 꺼내 포장하는(Picking) **’AMR-휴머노이드 협업’**이 물류 자동화의 최종 형태가 될 것입니다.
4. 물류 로봇 전쟁: ‘창고’와 ‘보도블록’의 7대 지배자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및 라스트마일 배송 시장은 ‘창고(B2B)’와 ‘배송(B2C)’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전장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시장은 압도적인 ‘내부 수요’를 가진 거대 기업과, ‘개방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술 전문 기업들로 나뉩니다.

🇺🇸 미국: ‘내재화’와 ‘개방’의 두 거인
미국은 이커머스 공룡이 자체 수요를 바탕으로 기술을 내재화하는 동시에, 전문 스타트업이 라스트마일 배송 시장을 개척하는, 가장 성숙한 시장입니다.
1. 아마존 로보틱스 (Amazon Robotics): ‘닫힌 생태계’의 압도적 1위
- 전략: 2012년 ‘키바 시스템즈’ 인수는 물류 로봇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아마존은 키바의 AMR 기술을 오직 자사의 물류센터(Fulfillment Center)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강점: ‘GTP(Goods-to-Person)’ 시스템의 완성. 수십만 대의 AMR이 24시간 움직이며 아마존 프라임 배송의 속도와 정확성을 보장합니다. 아마존의 이커머스 제국은 이 로봇 군단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들은 AMR이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닌, 핵심 경쟁력 그 자체임을 증명했습니다.
2. 서브 로보틱스 (Serve Robotics / SERV): ‘라스트마일’의 상징
- 전략: 우버(Uber Eats)의 배달 로봇 프로젝트팀이 분사하여 설립된 ‘라스트마일’ 전문 기업입니다. 이들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물류 비용의 50%를 차지하는 ‘배달 라이더 인건비’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 강점: 복잡한 도시 보도블록 주행 기술입니다. SLAM, AI 비전, 센서 퓨전을 통해 사람, 자전거, 유모차를 실시간으로 회피하며 자율주행합니다. 우버, 도미노피자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RaaS(서비스형 로봇)’ 모델로 로봇을 공급하며 상용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 서브 로보틱스를 만나보시죠.
3. 지브라 테크놀로지스 (Zebra Tech.): ‘아마존의 대항마’ 공급자
- 전략: 아마존이 키바를 독점하자, 월마트, FedEx 등 ‘아마존 이외의 모든 기업’은 AMR 솔루션이 절실해졌습니다. 지브라(Zebra)는 이러한 수요를 파고든 ‘Fetch Robotics’를 인수하여 AMR 시장의 강력한 공급자로 부상했습니다.
- 강점: ‘개방형 솔루션’입니다. 이들은 아마존의 GTP와 달리, 인간 작업자와 로봇이 협업하는 ‘Picking(집품)’ AMR에 강점을 가집니다. 바코드와 모바일 컴퓨터 분야의 전통적 강자로서, 기존 물류 시스템과의 완벽한 호환성을 제공합니다.
- 지브라 테크놀로지스를 만나보시죠
🇨🇳 중국: ‘거대한 내수’와 ‘글로벌 수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최대 이커머스 시장으로,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의 가장 큰 테스트베드입니다. 내수에서 검증된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4. 알리바바 – 차이냐오 (Alibaba – Cainiao): ‘아마존’의 중국판
- 전략: 아마존과 정확히 동일합니다. 알리바바 그룹의 물류 자회사 ‘차이냐오(Cainiao)’는 중국 전역의 거대한 스마트 물류창고에 자체 개발한 A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수천 대를 운영합니다.
- 강점: 규모의 경제와 ‘라스트마일’ 동시 공략입니다. 차이냐오는 창고용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뿐만 아니라, ‘샤오만뤼(小蛮驴)’라는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을 대학 캠퍼스,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에서 운영하며 물류의 처음과 끝을 모두 장악하고 있습니다.
5. 긱플러스 (Geek+): ‘포스트-키바’ 시대의 글로벌 1위 공급자
- 전략: ‘키바(아마존)’의 빈자리를 파고들어 세계 1위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공급자(유니콘 기업)가 된 중국의 대표 주자입니다.
- 강점: 다양한 제품 라인업과 글로벌 확장성입니다. GTP(키바 방식), Picking(작업자 보조), Sorting(분류) 등 물류 전 과정에 필요한 모든 AMR을 제공합니다. 중국을 넘어 미국, 유럽, 일본의 3PL(3자 물류) 기업과 리테일 기업에 로봇을 ‘수출’하며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대중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 한국: ‘제조업’과 ‘배달 문화’의 결합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인프라와 독보적인 ‘배달 문화’를 바탕으로,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 기술이 두 방향으로 특화되어 발전하고 있습니다.
6. 네이버랩스 (Naver Labs) & 삼성SDS: ‘미래 빌딩’과 ‘첨단 제조’
- 전략 (네이버): 네이버는 ‘1784’ 신사옥 전체를 거대한 로봇 테스트베드로 활용합니다. 네이버랩스의 AMR(‘루키’)은 건물 인프라(엘리베이터, 스피드게이트)와 5G로 연동되어, 빌딩 내에서 택배 배송, 커피 배달 등 ‘서비스 로봇’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 전략 (삼성): 삼성SDS(및 삼성전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초정밀 첨단 공정에 AMR을 적극 활용합니다. 사람이 아닌 로봇이 웨이퍼와 자재를 24시간 운반하며 수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합니다. 이는 ‘제조업 AMR’의 정점입니다.
7.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 ‘K-배달’ 환경에 최적화
- 전략: ‘서브 로보틱스’의 한국판입니다. 한국의 배달 시장 1위 사업자로서, 고질적인 라이더 부족 및 인건비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딜리 드라이브(Dilly Drive)’ 로봇을 개발했습니다.
- 강점: 한국 지형 특화입니다. 복잡한 보도블록 주행은 물론, 아파트와 오피스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스스로 호출하고 탑승하여, 현관문 앞까지 배달하는 고난도 기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5. 결론: 경제의 ‘혈관’이 된 보이지 않는 로봇들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과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은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미 우리 경제의 ‘혈관(Circulatory System)’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한 상품이 24시간 내에 문 앞에 도착하는 현대 이커머스 경제는, 물류창고를 누비는 이 ‘보이지 않는 로봇 군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을 내재화하여 ‘제국’을 건설했고, 긱플러스와 지브라는 그 제국에 맞서는 ‘무기’를 판매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브 로보틱스와 우아한형제들은 이 혁명을 창고 밖, 우리 집 현관문 앞으로 끌어내고 있습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AMR 시장은 ‘AI 혁명’이 창출하는 가장 확실하고 거대한 ‘B2B 시장’ 중 하나입니다. AI가 ‘뇌’라면, 자율주행 모바일 로봇은 이커머스라는 거대한 몸을 움직이는 ‘발’이며, 이들의 행보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