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삼국지’의 종말: 한국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대산, 여수, 울산) (1)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효자’이자 ‘수출 엔진’ 역할을 해온 석유화학 산업이, 역사상 유례없는 ‘적자의 늪’에 빠져 생존을 위한 대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한화솔루션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2023년부터 2년 연속 ‘조 단위’의 누적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순환(Cyclical)’에 따른 불황이 아닙니다. 이는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무너지는 ‘구조적 위기(Structural Crisis)’입니다.

정부 역시 “이대로는 다 죽는다”는 위기감 속에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하며, 기업들의 자율적인 사업 재편(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이 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과 구조조정의 필요성, 그리고 ‘대산, 여수, 울산’ 3대 석화단지별로 논의되는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심층 분석합니다.

저는 대산 석유화학단지의 한 기업에 Process Engineer로 커리어를 시작하여, 그 기업에서 약 17년을 여러가지 업무와 직책을 맡으면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정유회사와 석유화학회사를 대상으로 한 Global 촉매제작사의 한국 컨설턴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 고향과도 같고, 제 커리어의 대부분을 몸담았던 석유화학 업계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문제점과 돌파구를 만들어나가야하는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보는 것은 석유화학 업계의 존망, 생존, 부활을 위해서 필수적인 일입니다. 책임감을 갖고 블로그 글을 작성해보겠습니다.

석유화학

1. 📉 몰락의 서막: 한국 석유화학은 왜 위기에 처했나?

지금의 위기는 크게 3가지 ‘쓰나미’가 동시에 덮친 결과입니다.

1) ‘최대 고객’ 중국의 ‘배신’ (중국발 과잉공급)

가장 치명적인 이유입니다.

  • 과거: 한국은 원유를 수입해 나프타(Naphtha)를 만들고, 이를 ‘기초 유분'(에틸렌, 프로필렌 등)으로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며 막대한 이익을 냈습니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고객’이었습니다.
  • 현재: 중국이 ‘석유화학 자급률 100%’를 넘어 ‘최대 경쟁자’로 변모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세계 석유화학 공장의 30% 이상을 짓게 했고, 그 결과 ‘공급 과잉 지옥’이 열렸습니다.
  • 결과: 이제 중국은 우리가 만들던 ‘범용(Commodity)’ 제품을 우리보다 더 싸게, 더 많이 만들어 동남아 시장까지 덤핑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한국산 제품이 설 자리가 사라졌습니다.

2) ‘원가 경쟁력’의 완벽한 상실 (제조원가 열위)

한국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의 근본적인 이유는 ‘비싼 원료’에 있습니다.

  • 한국 (NCC): 주력 설비는 ‘나프타 분해 설비(NCC)’입니다. 이는 ‘원유'(석유)에서 뽑아낸 나프타를 원료로 하기에 유가에 100% 연동됩니다. 유가가 비싸면 원가도 비싸집니다.
  • 중동 (ECC): ‘에탄 분해 설비(ECC)’를 씁니다. 원유 시추 시 나오는 ‘천연가스(에탄)’를 원료로 씁니다. 이 가스는 나프타보다 1/3 ~ 1/5 수준으로 저렴합니다.
  • 중국 (CTO/MTO): ‘석탄’이나 ‘메탄올’을 원료로 씁니다. 이 역시 정부 보조금과 결합해 나프타보다 훨씬 싼 원가를 자랑합니다.
  • 결과: 한국(NCC)은 비싼 원유로 물건을 만드는데, 중동(ECC)과 중국(CTO)은 싼 가스와 석탄으로 물건을 만듭니다. 가격 경쟁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3) ‘설비 노후화’와 ‘탈탄소(ESG)’의 이중고

  • 설비 노후화: 울산, 여수 등 70~80년대 ‘수출 드라이브’ 시절 지어진 1세대 NCC 설비들은 에너지 효율이 극도로 낮습니다. 같은 1톤을 생산해도 신규 설비보다 막대한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 ESG 압박: 설비가 낡았다는 것은 ‘탄소 배출량’이 엄청나다는 의미입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화되면, 한국 석유화학 제품은 비싼 ‘탄소세’까지 물어야 해 가격 경쟁력은 더욱 악화됩니다.

2. 🚨 “이대로는 다 죽는다”: 구조조정, 왜 시급한가?

“언젠가 경기가 회복되겠지”라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1. 조(兆) 단위 ‘영업손실’의 늪 (재무 손실 심화)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주요 기업들의 석유화학 부문(기초소재)은 2023년부터 분기마다 수천억 원, 연간 조 단위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의 현금 흐름을 고갈시키고, 부채 비율을 급등시켜 ‘미래 투자(R&D)’조차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2. ‘범용 제품’으로는 이익 개선 불투명 중국발 공급 과잉은 ‘범용 제품’ 시장이 향후 5~10년간 회복 불가능함을 의미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고부가 스페셜티(Specialty)’나 ‘친환경 소재’로 전환하는 것뿐인데, 기존의 ‘적자 덩어리’ 범용 설비를 끌어안고는 이 전환을 위한 투자 여력이 없습니다.
  3. ‘정유’와 ‘석화’의 분리 (Integration 미흡) 회원님의 지적대로, 해외 선진 기업들(엑슨모빌, 다우 등)은 ‘정유(기름 정제)’와 ‘석유화학(제품 생산)’이 수직 계열화되어 원가 효율을 극대화합니다. 반면 한국은 정유사(SK, S-Oil, GS칼텍스)와 석유화학사(LG, 롯데, 한화)가 분리되어 있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이 ‘칸막이’를 부수지 않으면 안 됩니다.

3. 🏗️ ‘살기 위한 수술’: 현재 논의되는 3대 구조조정 방안

정부는 ‘자율적 사업 재편’이라는 이름하에, 기업들이 스스로 ‘낡은 공장 문을 닫고, 새 공장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3대 석화단지별 ‘각자도생’ 및 ‘합종연횡’입니다.

1) 울산 (Ulsan): ‘1순위 감축’과 ‘미래 소재’ 전환

  • 현황: 한국 석유화학의 ‘심장’이자, 가장 ‘노후화’된 설비(1세대 NCC)가 밀집한 곳입니다. (SK, S-Oil 등)
  • 구조조정안:‘선제적 설비 감축’ 1순위 지역입니다.
    • 기업들은 가장 오래되고 효율이 낮은 NCC의 가동을 중단(셧다운)하거나,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하는 ‘열분해유’ 공장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입니다.
    • SK이노베이션 등은 석유화학 대신 ‘배터리 소재’, ‘바이오 플라스틱’ 등 고부가 사업으로의 피벗(Pivot)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2) 대산 (Daesan): ‘세기의 빅딜’과 ‘NCC 통합’

  • 현황: ‘석유화학 삼국지’의 격전지입니다. 한화, LG화학, 롯데케미칼이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똑같은 ‘NCC 공장’을 각각 돌리고 있습니다.
  • 구조조정안: ‘합종연횡(M&A)’이 핵심입니다.
    •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대산 NCC 공장 통합(합작사 설립)”입니다.
    • 각각 100만 톤 규모의 공장을 따로 돌리느니, ‘원-크래커(One-Cracker)’로 통합하여 200~300만 톤급 ‘규모의 경제’를 실현, 원가를 낮추자는 ‘메가 딜’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3) 여수 (Yeosu): ‘정유-화학 통합’과 ‘고도화’

  • 현황: GS칼텍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이 포진한 국내 최대 규모의 단지입니다.
  • 구조조정안: ‘정유사와의 통합(Integration)’이 핵심입니다.
    • 정유사인 GS칼텍스가 석유화학사인 롯데, LG와 협력하는 모델입니다.
    • 특히 GS칼텍스가 최근 완공한 ‘MFC(혼합 공급 원료 분해 설비)’가 대안으로 떠오릅니다. MFC는 비싼 나프타(NCC) 외에 LPG 등 저렴한 원료도 투입할 수 있어 원가 경쟁력이 높습니다.
    • 정유사의 인프라를 석유화학사가 공유하며 효율을 높이는 ‘고도화’가 여수 단지의 생존 전략입니다.

4. 결론

한국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한폭탄입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NCC 기반 범용 제품)은 중국의 부상과 원가 경쟁력 상실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제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은 ‘양이냐 질이냐’의 기로에 섰습니다.

  • ‘범용’은 대산(빅딜)과 여수(통합)처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를 낮추고,
  • ‘노후 설비’는 울산처럼 과감히 ‘폐쇄’하며,
  • 그렇게 확보한 자원으로 ‘스페셜티’와 ‘친환경 소재’라는 ‘질(Quality)’로 나아가는 것.

이 고통스러운 ‘선택과 집중‘의 속도에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의 필요성, 현황,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대산 / 울산 / 여수, 3개 단지롤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N한국 NCC (나프타 분해 설비) 비효율의 상징이 되어버린 대산 석유화학 구조조정 문제를 현미경 수준으로 심층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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