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흔들리지 않는 유럽의 Energy Transition (에너지 전환) 노력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현재 거대한 변곡점 위에 서 있습니다.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과 그의 에너지 정책 기조 변화로 인해, 탄소 중립과 신재생 에너지로의 Energy Transition 이라는 글로벌 드라이빙 포스(Driving Force)는 크게 주춤하는 모양새입니다. 실제로 많은 국가가 속도 조절에 들어갔지만, 유럽, 그중에서도 네덜란드는 예외입니다.
이번 출장의 첫 번째 공식 일정으로 방문한 ETCA (Energy Transition Campus Amsterdam)는 이러한 Energy Transition에 대한 유럽의 굳건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논리를 떠나, 생존을 위해 ‘Energy Transition(에너지 전환)’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네덜란드의 지정학적 배경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혁신적인 생태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네덜란드가 Energy Transition에 사활을 거는 이유 네덜란드(Netherlands)라는 국명은 ‘낮은 땅’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해수면보다 낮고, 간척 사업을 통해 얻은 땅이 영토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들에게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당장 해결해야 할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 리스크나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네덜란드가 Energy Transition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이러한 절박함은 기술적 혁신으로 이어졌습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쉘(Shell)을 필두로 네덜란드 기업들은 탄소 포집 및 활용(CCUS),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에서 Energy Transition 의 선두 주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쉘의 정유 공장(Pernis Refinery)과 지역 농가와의 상생 모델입니다. 정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단순히 포집하여 저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이프라인을 통해 10km 이상 떨어진 거대한 원예 단지로 이송합니다. 이 이산화탄소는 비닐하우스 내 토마토나 튤립의 광합성을 촉진하는 촉매제로 사용되어 식물의 고속 성장을 돕습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농업 생산성은 높이는 이 순환 모델은 한국의 현실과 비교했을 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습니다.

페리를 타고 출근하는 아침, 암스테르담의 두 얼굴 ETCA 방문을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습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Amsterdam Centraal) 뒷편에는 IJ 강을 건너 북쪽 지역으로 향하는 무료 페리 선착장이 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구도심과 달리, 강 건너편은 새로운 산업과 주거 단지가 어우러진 미래지향적인 공간입니다. 현지 직장인들 틈에 섞여 페리에 올랐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강바람을 맞으며 출근하는 경험은 꽤 신선했습니다. 운하와 자전거, 그리고 붉은 벽돌집으로 대표되는 암스테르담의 낭만적인 이미지 뒤편에, 치열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일상을 영위하는 또 다른 암스테르담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단 하루였지만, 관광객이 아닌 이곳의 구성원이 되어 출근한다는 느낌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ETCA, 경쟁을 넘어 협력의 캠퍼스로 페리에서 내려 도착한 ETCA (Energy Transition Campus Amsterdam)는 그 이름처럼 ‘캠퍼스’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과거 쉘의 단독 연구소였던 이곳은 이제 에너지 전환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다양한 주체들이 모이는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로 탈바꿈했습니다. 시끌벅적하고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암스테르담의 다운타운의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ETCA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것은 ‘개방성’과 ‘자연 친화’였습니다. 기업의 보안을 중시하는 폐쇄적인 연구소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불필요하고 권위적인 장식 대신 건물 곳곳에 식물들이 배치되어 있어 마치 거대한 온실이나 대학 캠퍼스에 온 듯한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이곳에는 쉘뿐만 아니라 엔터프라이즈 AI 기업인 C3 AI를 비롯한 다양한 글로벌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에너지 기업과 IT 기업이 한 지붕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Energy Transition을 목표로시너지를 창출하는 구조입니다. 기존의 화석 연료 기반 산업 구조를 벗어나 디지털 기술과 융합하여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Energy Transition을 추구하는 시도가 이 캠퍼스 안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몰입과 소통의 공존, 그리고 비즈니스 다이닝 이러한 창의적인 공간에서의 업무 협의는 매우 생산적이었습니다. 딱딱한 회의실 분위기를 벗어나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공간에서 파트너사들과 머리를 맞대니,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도 온전히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Energy Transition 의 과제와 기술적 해법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오갔고, 향후 협력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회의를 마치고 일행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위해 ‘The Butcher Social Club’으로 이동했습니다. 모던하고 캐주얼한 분위기의 이 레스토랑은 암스테르담 북부의 힙한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살인적인 물가를 반영하듯 가격대는 높았지만,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안도감과 맛있는 음식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 암스테르담 ETCA 방문을 통해 확인한 것은 명확합니다. Energy Transition은 정치적 구호나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여정이라는 점입니다. 네덜란드가 지리적 한계를 기술 혁신과 개방형 협력으로 극복해 나가듯, 우리 기업들 또한 폐쇄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산업 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물론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정부 주도하에 업계가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도로 한국의 정유, 석유화학 산업의 현재는 불투명하고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ETCA의 캠퍼스에서 목격한 그 활기찬 혁신의 에너지가 한국의 산업 현장에도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도 정유, 석유화학 업계의 일원으로써 조금이나마 Energy Transition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